교만을 조심하십시오
MormonWiki
교만을 조심하십시오
에즈라 테프트 밴슨 회장, 1989년 4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다시 맞는 영광스런 교회의 연차대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전세계에서 헌신적인 교회 회원들의 사랑과 기도와 봉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몰몬경으로 온 세상을 덮고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우고자 노력하시는 충실한 모든 성도들에게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몰몬경을 보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활과 온 지상에 그 놀라운 메시지를 더욱더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책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 경전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니파이전서 19:23 참조)
교리와 성약은 몰몬경이 “차락한 백성들의 기록”임을 말해 줍니다. (교성 20:9) 왜 그들은 타락했습니까? 그것이 몰몬경의 주요 메시지의 하나입니다. 몰몬경은 끝부분의 장에서 이와 같이 답해 줍니다. “이 나라 곧 니파이 백성들의 교만함을 보라… 이 교만으로 인하여 멸망하리로다.” (모로나이서 8:27) 우리가 그 타락한 백성들로부터 나온 중요한 몰몬경 메시지를 놓치지 않게 하시려, 주님은 교리와 성약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교만을 조심하여 옛 니파이인과 같이 되지 말라.” (교성 38:39)
나는 간절히 여러분의 신앙과 기도의 도움을 구하며, 이 몰몬경 메시지인 교만이라는 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이 메시지는 얼마 동안 나에게 큰 부담이 되어 왔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이 메시지가 이제 전달되기를 원하심을 압니다.
전세의 회의에서, 아침의 아들인 루시퍼가 떨어져 나간 것은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니파이후서 24:12~15, 교성 76:25~27, 모세서 4:3)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종말에 불로 이세상을 깨끗하게 하실 때, 교만한 자는 초개와 같이 될 것이며, 온유한 자는 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제3니파이 25:1, 교성 29:9, 조셉 스미서 역사 2:37, 말라기 4:1, 제3니파이 12:5)
교리와 성약에서 주님은 “교만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세 번 하셨는데, 교회의 두번째 장로인 올리버 카우드리와 선지자의 아내인 엠마 스미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이 포함됩니다. (교성 23:11, 25:14, 38:39)
교만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죄이며, 많은 사람들이 무지에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모사이야서 3:11, 제3니파이 6:18) 경전에는 의로운 교만과 같은 말은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죄로 간주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말하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그것을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이해하여 경전에 나오는 단어를 알고 거기서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앨마서 5:61, 니파이후서 4:15, 모사이야서 1:3~7)
우리는 대체로 교만을 자기 중심, 자만, 자랑, 거만함 또는 오만함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죄의 요서들이지만, 가장 중요하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교만의 중심적인 양상은 적대감,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적대감이란 증오의 감정, 적개심 또는 반목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능력으로 사탄은 우리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교만은 근복적으로 경쟁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우리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대해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뜻대로 하려 들게 됩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그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빌립보서 2:21)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뜻에 더 치중하면 소망, 욕망과 감정을 다르시지 못하게 됩니다. (앨마서 38:12, 제3니파이 12:30)
교만한 자는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권을 (힐라맨 12:6)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지혜보다는 그들의 진리에 대한 인식을, 하나님의 신권 권능보다는 그들의 능력을, 주님의 놀라우신 업적보다는 그들의 성취를 더 내세웁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적대감은 반항, 강퍅한 마음, 완고함, 회개치 않음, 자랑, 쉽게 성 내고 표적을 구하는 등의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그들의 뜻에 동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그들의 의견을 바꾸는 데는 흥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널리 퍼져 있는 교만이라도 죄의 다른 중요한 면은 우리 이웃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게 생각하고 그들을 낮추어 보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힐라맨서 6:17, 교성 58:41)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의 지성과 의견, 행실, 부, 재능, 또는 기타 세상적인 평가 기준을 내세움으로써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듭니다. 시 에스 루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은 무언가를 갖고 있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비교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위에 있다는 즐거움은 인간을 교만하게 한다. 비교의 요소가 사라지면, 교만도 사라진다.” (순수한 기독교 정신, 109~110쪽)
전세의 천국 회의에서 루시퍼는 예수 그리스도가 옹호한 하나님의 꼐획과 경쟁하여 자신의 제안을 내 놓았습니다. (모세서 4:1~3) 그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존경받기를 원했습니다. (니파이후서 24:13) 간단히 말해서 그의 교만한 욕망은 하나님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교성 29:36, 76:28)
경전에는 개인이나 단체, 도시나 나라에 대한 교만이란 죄의 심각한 결과에 대한 증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잠언 16:18) 교만은 니파이 민족과 소돔시를 멸망시켰습니다. (모로나이서 8:27, 에스겔 16:49~5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화를 냈으며, 그것은 그들의 신분을 위협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요한복음 11:53)
사울은 교만으로 인해 다윗을 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기 때문에 질투가 났습니다. (사무엘상 18:6~8)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인간의 심판을 더 두려워합니다. (교성 3:6~7, 30:1~2, 60:2)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하는 것보다 더 비중이 크게 됩니다.
노아왕은 선지자 아빈아다이를 풀어주려 했으나, 그의 사악한 제사들이 그의 교만에 호소하여 아빈아다이를 불길속에 처넣게 했습니다. (모로나이서 17:11~12) 헤롯은 침례 요한의 목을 베라는 그의 아내의 요청을 받고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그 곁에 “앉은 자들”에게 좋게 보이려는 교만한 욕망이 요한을 죽이게 했습니다.
인간의 판단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교만한 자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12:42~43)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항 동기를 보면 죄가 어디에 있는지 곧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러한 일을 항상” 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29) 우리의 동기가 우리 자신을 우리 형제나 다른 사람보다 높이 올리여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데 있는 것이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월급으로 그들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가 보다는 월급이 가른 사람 것보다 많은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들이 얻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으로 인한 적대감입니다.
교만이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속박당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신의 속삭임보다 더 강하게 유혹합니다. 논리를 따지는 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교만한 자는 쇠막대를 지나칩니다. (제3니파이 8:19~28, 11:25, 15:23~25)
교만은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우리 자신에 있는 것은 거의 인정하려 들지 않는 죄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이 교만이란 저보다 못한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부자나 학식있는 자와 같은 높은 사람들의 죄라고 생각합니다. (니파이후서 9:42)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서 훨씬 더 흔히 보게 되는 문제는 밑에서 올려다 보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교만입니다. 그것은 결점 찾기, 험담, 비난, 불평, 분수에 넘는 생활, 질투, 탐심, 배은망덕, 용서하지 않고 시기함 등 너무나 많은 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순종은 우리 위에 있는 권능있는 자에 대항하여 싸우는 필수적인 교만한 힘입니다. 그 대상은 부모거나 신권지도자, 교사 또는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누군가 자기 위에 있다는 사실을 싫어합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위치를 낮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심은 좀더 흔히 보는 교만의 한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어떻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자기 기만, 자기 연민, 세상적인 자기 성취, 자기 만족 및 자기 본위와 같은 모든 문제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세상의 영광”과 힘을 얻기에 세워지는 비밀 결사를 낳습니다. (힐라맨 7:5, 이더서 8:9~16, 22,23, 모세서 5:31) 소위 비밀 결사라는 교만의 죄의 열매는 야렛인과 니파이인의 문명의 몰락을 초해했고, 지금까지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많은 나라들을 멸망시키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이더서 8:18~25)
교만의 다른 모습은 논쟁하는 것입니다. 말다툼, 싸움, 불의한 지배, 세대 차이, 이혼, 배우자 학대, 폭동 및 소요… 이러한 모든 것은 교만이라는 범주에 포함됩니다.
가정에서의 논쟁은 주님의 영을 쫓아냅니다. 그것은 또한 많은 가족들을 쫓아 냅니다. 논쟁은 거친 말에서부터 세계 도처의 분쟁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다양합니다. 경전은 우리에게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잠언 13:10, 28:25)고 말해 줍니다.
경전은 교만한 자는 쉽게 화내며 악의를 품는다고 증거해 줍니다. (니파이전서 16:1~3) 그들은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용서하지 않고 상처받은 그들의 감정을 정당화시키려 듭니다.
교만한 자는 권고나 시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잠언 15:10, 아모스 5:10) 자기 방어는 자신의 연약함이나 실패를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3:9, 요한복음 6:32~39)
교만한 자는 그들이 가치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을 세상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그들의 자긍심은 세상적인 면에서 얼마나 성공했다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정해집니다. 그들은 업적에 있어서나, 재능이나 아름다움이나 지적인 면에서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느낍니다. 교만은 추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성공했다면, 나는 실패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행하며, 인간의 판단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더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자긍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교만은 그 말 자체로 보면 저주스러운 죄입니다. 그것은 발전을 제한시키거나 멈추게 합니다. (앨마서 12:10~11) 교만한 사람은 쉽게 가르침받지 못합니다. (니파이전서 15:3, 7~11) 그들은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여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우리의 모든 관계 즉, 하나님과 그의 종과 우리와의 관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고용주와 고용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등 모든 인류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교만의 정도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결정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분이 있는 곳으로 올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도 그와 같이 하기를 원합니까?
교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다른 사람과 형제 관계라는 느낌을 버리게 해줍니다. 교만은 “지닌 부와 학식의 정도에”(제3니파이 6:12)따라 우리를 구분하고 나눕니다.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단합이란 불가능한 것이며, 우리가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주님의 것이 아닙니다. (모사이야서 7:18, 18:21, 교성 38:27, 105:2~3)
교만으로 인해 과거에 그리고 현재 우리 생활, 우리 가정, 교회에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만으로 인해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면, 회개하여 생활이 변하고, 결혼 생활이 안정되고, 가정의 강화됨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성 58:43) 감정을 상하고 교만으로 인해 용서치 못하고 주님의 식탁에 온전히 앉을 수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활동이 저조하게 된 많은 회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 교만이 아니었다면 선교사업에 나가 있었을 수많은 젊은이들과 부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앨마서 10:6, 힐라맨서 3:35)
만약 성전 사업에 쏟는 시간을 우리 시대에 교만한 마음으로 다투어 추구하는 많은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성전 사업이 얼마나 증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만은 모든 사람에게 때와 정도를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여러분은 세상의 교만을 나타내는 리하이의 꿈에서 본 건물이 왜 그처럼 크고 넓었으며 그곳으로 들어간 무리들이 많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니파이전서 8:26,33, 11:35~36)
교만은 널리 행하여지고 있는 죄이며, 큰 악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널리 행하여지고 있는 죄이며, 큰 악입니다.
교만의 치료제는 겸손, 즉 온유함과 순종입니다. (앨마서 7:23) 그것은 애통하는 마음과 상한 심령입니다. (제3니파이 9:20, 12”29, 교성 20:37, 59:8, 시편 34:18, 이사야 57:15, 66:2) 루드야드 키플링이 그것을 잘 묘사했습니다.
“걱정 소요 사라지고 수령과 왕은 떠나가, 주께서 보이신 희생 결단코 없어지잖네. 만군의 주 잊지 않게 우리와 함께 하소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 찬송가 139장)
하나님은 겸손한 백성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지는 수도 있고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앨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겸손해지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니.” (앨마서 32:16)
스스로 겸손해지도록 합시다.
우리는 형제 자매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고 그들을 우리 자신과 같이 존중하며, 우리와 같이 또는 더 높이 올려 줌으로써 스스로 겸손하게 될 수 있습니다. (교성 39:24, 81:5, 84:106)
우리는 권고와 징계를 받음으로써 스스로 겸손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10, 힐라맨서 15:30, 교성 65:55, 101:4~5, 108:11, 125,61, 84, 136:31, 잠언 9:8)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 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제3니파이 13:11,14, 교성 64:10)
우리는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모사이야서 2:16~17)
우리는 선교사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할 수 있는 말을 전파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앨마서 4:19, 31:5, 48:20)
좀더 자주 성전에 들어감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버려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 태어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교성 58:43, 모사이야서 27:25~26, 앨마서 5:7~14,49)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에 따르며, 우리 생활에서 주님을 앞세움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겸손해지도록 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시온을 구속하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시대에 우리가 시온을 건설하지 못했던 것은 본질적으로 교만이라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니파이인들간에 헌신이 종말을 맞이했던 것도 교만이라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제4니파이 24:25)
교만은 시온에 큰 장애물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교만은 시온의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교만을 극복하여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앨마서 60:23~24, 마태복음 23:25~26)
우리는 “성신이 인도하시는 대로 맡겨” 교만한 “육으로 된 자기를 버리고” ”주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도가 되며” ”어린 아이같이 되어 유순하고, 온유하며, 겸손하게” 되어야 합니다. (모사이여서 3:19, 앨마서 13:28)
우리가 그와 같이 할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성스러운 소명을 다할 수 있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복음 주제: 겸손, 교만
에즈라 테프트 밴슨 회장, 1989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