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섬기는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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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섬기는 우상
오관 중에서 가장 오래까지 기억되는 감각이 후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요즘 아침마다 집밖에 나서서 수 십 년 동안 맡아왔던 부드럽고 싱그러운 풀 냄새와 흙 냄새를 맡을 때 기분이 상쾌해지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때로 나는 밖에 나가 푸른 잔디 냄새를 맡는다든지 먼 데에서 미풍이 실려오는 쑥 냄새 등과 같은 독특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아리조나에서의 소년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곳은 건조한 지역입니다마는 의지가 굳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날이 궂으나 개나 항상 땅과 가축과 함께 일하였습니다. 교통수단은 말이나 마차였습니다. 나는 나의 형제들과 함께 과수원이며, 먼지 나는 길이며, 콩, 토마토, 양파, 호박을 심은 반 이랑 사이를 바람처럼 곧잘 뛰어 다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에는 누구보다 자연과 벗하여 살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 낮에 천둥을 몰고 오는 검고 짙은 구름이 모이기 시작할 때 나는 들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먼지가 쌓인 길에 떨어지면서 점차 빠른 빗줄기로 변했을 때, 나는 어린 시절 한여름 오후면 곧잘 천둥을 몰고 오는 무서운 구름이 산 중턱에 내려오다가 목마른 대지에 시원스레 비를 내리게 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어린 우리는 비를 피라기 위해 헛간을 향해 뛰었으며, 번개가 여기저기서 번쩍거리면 우리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점점 세게 퍼붓는 비의 위력을 놀라운 듯이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비각 그친 후, 흙 냄새, 나무 냄새, 풀 냄새로 가득 찬 대지는 더욱더 깨끗하고 상쾌했습니다/
오래 전 석양이 물드는 저녁에 소 떼를 몰던 일이 생각납니다. 나는 곧잘 황혼의 부드러운 빛과 해바라기의 향기로운 내음 속에서 오래 묵은 울타리에 기대어 서서는, “내가 만일 세상을 창조한다면 어떠한 세상을 창조하게 될까?”라고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이와 같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도 나는 천둥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 지상에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느낍니다.
이처럼 기분 좋은 일들을 회상할 때 또 다른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찾아 들었습니다. 산 중턱을 낮게 내려 덮은 짙은 검은 구름은 여러 해 동안 총관리 역원들이 관심을 두고 있던 문제로 내 생각을 돌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란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주님의 택함 받은 선지자가 관심과 주의를 모으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격동하는 그러나 중대한 시대에서 이 세상이 처하여 있는 일반적인 사악한 상태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찾게 된다는 일반적인 원리가 생각납니다. (누가 12:48)
주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주였으며, 그 대가로 의로움과 계명에 대한 순종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이 지상의 백성들이 행하는 일과 그들에게서 기대되는 바를 비교해 볼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악이 만연해 있습니다. 사탄은 그의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악마가 거대한 차도처럼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홍수 이전의 노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여러 가지 임무를 띠고 여러 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아름다운 농촌을 지나거나 광활하고 아름다운 지구 위를 나를 때 나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상 사람들의 사악한 행위를 비교하면서 우리 인류는 이토록 훌륭한 지구에 있을 자격이 없지 않은가하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 땅이 이같이 신음하는 소리를 에녹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화있도다. 인간의 어미된 나느 화있어 괴롭도다. 내 자식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는 피곤하였도다. 어느 때에 쉬어 내게서 나온 더러움을 씻어 내리오?” (모세서 7:48)
총관리 역원들은 주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과 주변의 오염, 무례, 도둑질, 거짓말, 오만, 신성모독, 간음, 간통, 동성애, 생식하도록 주어진 신성한 권리를 남용하는 행위, 그 외의 갖가지 신성 모독 행위에 대하여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고의 외침이 그토록 축복받은 사람들 가운데 필요하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 성도들 간에도 이와 같은 경고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다소 있다는 것은 거의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성도들은 많은 영의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며, 영원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영생의 길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영생의 길을 보고 아는 것만으로도 그 길을 걷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사탄과 그의 추종자의 유혹에 이끌려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세상”의 우상 숭배에 빠져들어간 것입니다.
우상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구약을 공부하면서 나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지니라”는 계명을 십계명 중 첫째 번으로 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고의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의 축복을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항상 신앙을 행사하기 보다는 눈앞에 있는 것에 의존하기가 쉽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질적인 것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경전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탄의 세력에 굴복하여 신앙을 잃게 될 때, 신앙 대신 “육체의 힘”과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석으로 만든 신상들” (단 5:23)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상입니다. 구약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을 두고 가장 신뢰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이 경배하는 신입니다. 그 신이 이스라엘의 참되고 갈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구를 읽고, 니파이가 제언한 것과 같이 그들을 우리 자신으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고대의 우상 숭배와 오늘날 우리의 행위가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이 지상에서 우리의 일을 행하는 데 필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가축과 땅과 곳간과 부를 갖고 있어서 그것들을 그들의 우상으로 섬기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적인 물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많은 돈, 주식, 증권, 재산, 가구, 자동차 등. 길고 행복한 이 세상 생활을 보장해 줄 것 같은 이러한 자기의 우상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이와 같은 많은 자원을 우리의 가정과 정원회를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 곧 선교 사업을 확장시키고, 자녀를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키우며, 계보사업과 성전 사업을 수행하고, 모든 면에서 이웃을 도와 그들로 하여금 풍요로운 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축복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로나이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생명이 없는 것으로 너희를 꾸미면서도, 굶주리며 궁핍하며 헐벗고 병들어 고난당하는 자가 너희 옆을 지나쳐 가거늘 저들을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느냐” (모로나이 8:39)
오늘날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주를 차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든 사람은 제 마음대로 생활하며 자신이 만든 하나님의 형상을 구하였음이라. 그 형상은 세상의 모습이요, 본질은 하나의 우상이며 낡은 것이니 바빌론 곧 멸망할 대 바빌론처럼 파멸하리라.” (교성 1:16)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나 그가 투자한 사업체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주님의 사업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 하여 부름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재물을 얻기 위해 주님에 대한 봉사를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재미있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시세로 백만불어치의 금은 지각층에만 매장되어 있는 금의 총 매장량의 270억분의 일밖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율이란 이간의 생각으로는 거의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이 지구를 다스리는 권능을 지니신 주님은 “수 없는 세계”를(모세서 1:33)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일 이 사람이 신권의 성약과 맹약을 받아들이면(교성 84:33~44)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교성 88:38)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황금과 육욕에 눈이 어두워 이 위대한 약속을 저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을 초기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토록 보잘것없는 것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이것에 비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선교사로 부름받은 한 청년은 이러한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잘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성능 좋은 그의 새 자동차를 잘 관리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는 자동차의 성능과 속력을 자랑했으며, 자동차를 운전할 때면, 끊임없는 자동차의 질주는 그가 실로 어딘가로 가고있다는 환상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그의 아버지는 “그 애는 손재주가 있습니다. 그 애에게는 그것으로 족합니다.”라고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그것으로 족할까요? 이 청년은 자기의 자동차의 힘이 바다나 태양의 힘과 비교해 볼 때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하였으며, 율법이나 신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많은 태양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신권의 능력인 것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강철과 고무와 빛나는 크롬으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우상을 섬긴 것이었습니다.
한 노부부는 직장에서 은퇴하였으며, 실제로 교회에서도 은퇴하였습니다. 이들은 소형트럭과 캠프용 천막 장비를 구입하고는, 교회의 모든 직책을 버리고, 전국을 두루 다니며 짧게 남은 여생을 즐겼습니다. 이들은 너무 바빠서 성전을 방문할 시간이 없었고, 계보를 탐구할 시간이 없었으며, 선교사업을 하 시간이 없었습니다. 대제사 정원회와 연락도 끊겼으며, 개인 역사를 기록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지도력을 지부는 필요로 하였으나 “끝까지 견디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전, 원숭이를 사로잡기 위해 정글에 갔던 자들에 관한 기사를 읽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원숭이를 잡기 위하여 그물 던지기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물 던지기는 작은 동물을 다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발한 착상을 해냈습니다. 그들은 조그만 상자를 수없이 만들고, 각 상자의 위에는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상자들을 나무 아래에 갖다 놓고 각 상자 속에 원숭이가 특히 좋아하는 열매를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자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안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상자 안에 먹을 열매가 보이자 원숭이는 팔을 그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열매를 쥐고 손을 빼려 하여도 열매가 너무 컸기 때문에 손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에 숲에 숨어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나와 원숭이에게 몰려 드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일은, 원숭이가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도망칠 생각에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뛰지마는 손에 쥔 열매를 놓고 손을 빼서 도망가려 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원숭이를 잡습니다.
사람에게서도 이러한 어리석음을 흔히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적인 것, 곧 별의 왕국에 속한 것을 움켜 쥔 이들은 아무리 위급한 때가 오더라도 움켜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때 사탄은 이들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왕국을 세우는 데 온 일생과 자원을 바치면 그것만을 얻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현대인이라고 자처하며, 과거 어떠한 사람도 누려보지 못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하는 임무를 쉽게 저버리는 호전적인 사람들입니다. 적이 일어날 때 우리는 돌과 강철로 만들어진 우상, 즉 군함, 비행기, 미사일, 요새 등에 막대한 경비를 투여해 놓고 그것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위협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힘에만 의존합니다. 우리는 전쟁이라는 기술을 잘 익힌 자들을 애국자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구세주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사탄의 거짓된 애국심인 것입니다. 구세주는 이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태 5:44~45)
우리가 의로운 생활을 하면 주님께서는 적이 우리를 삼키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미대륙에 거하는 주민에게 주어진 특별한 약속입니다. (니파이후서 1:7)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4:14, 교성 98:37) 주께서 배반당하실 때 하신 다음 말씀에서 우리는 그가 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 (마태 26:53) 병정들이 얼마나 두려워 하였겠는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과 그의 백성들은 이 같은 군사의 보호로 구출되었으며 (대하 20장), 엘리사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엘리사는 그의 사환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써 위로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왕하 6:16).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17절).
에녹도 신앙이 강한 자로서 적으로 인하여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에녹의 신앙이 참으로 컸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니 원수가 대적하러 오는지라 그가 주의 말씀을 말하니 땅이 진동하여 산이 도망가며 강물이 흐름을 바꾸며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광야에서 들려 모든 민족이 크게 두려워하였더라.” (모세서 7:13)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하신 약속을 믿을 수 없으며 그를 믿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분명합니다. 세상적인 것을 목표로 삼는 일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신앙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복음을 우리의 적에게까지 전해서 그들을 더 이상 우리의 적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대인의 우상 숭배와 “육체의 힘”에 의존하는 타성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현대에 온 세상에게 “바빌론에 남아 있는 자는 하 사람도 살려두지 아니하리라.”(교성 64:24)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전파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사도행전 2:37)
이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
거의 2,000년이 지난 오늘에는 베드로가 전하던 말과 꼭 같은 말을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음성 역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미치리니, 듣고자 하는 자는 모두 들을 수 있느니라. 너희는 준비하여 장차 임할 일에 대비하라. 이는 주께서 가까우심이라.” (교성 1:11~12)
각 사람과 각 가족이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준비하는 길은 보다 강한 신앙을 지니고, 회개하며, 지상의 왕국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사업을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약간 어려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참된 사업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영원성을 알게 될 때, 세상의 것을 버리고 참된 축복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여기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불러 이 사업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바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자를 위한 영생의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멘.
스팬서 더블류 킴볼, "우리가 섬기는 우상" 성도의 벗, 1977년 8월